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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게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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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wig

나는 몽유병의 언어로 말하게 될 것이다. 내가 잠에서 깨어나면 더이상 언어가 아니게 될 언어로.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G.H에 따른 수난』

갑작스레 섬광과도 같이 어떤 맛, 공포가 훑어 내려가는 가슴에 데어 눈을 떴다. 시뻘건 하늘이 거울에 비쳐 방을 채웠다. 해가 뜨고 있었다. 하루의 가장 붉은 시간. 몇 년 전 보르헤스의 인터뷰를 읽었을 때 그가 설명하던 악몽의 맛이란 혀에서 느껴지는 전치된 감각 혹은 은유적 표현 정도라고 이해했지만, 오늘에서야 순수한 공포로서 가슴에 품고 눈을 떴다. 몸 전체가 그 맛으로 아렸다.

며칠 전 귀접을 경험한 뒤 그의 지속적인 방문이 가져오는 불안감. 머지않아 속의 무언가를 모조리 빼앗겨 버릴 것만 같은 점지와 동시에 그의 존재를 전부 인지하면서도 얼굴 없는 성기의 방문을 환영하는 나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 조명만 그득한 빈 무대에서 내 머리채가 끌어당겨지자 온몸의 뿌리가 뽑혀 나가던, 태풍과도 같은 물리력에 대항하던 내 안의 의지와 현실에 대한 구분. 그것이 어느 순간 모호해지는 것은 오늘 내 몸이 비로소 귀신의 몸이 되어버린 때에 찾아왔다.

나는 어떤 임무를 부여받았는데, 마치 떠돌이 들개들이 생존을 위해 모이듯 계약에 의한 가족 구성원들과 함께 임무를 수행해야만 했다. 우리의 임무란 절벽 흙 사이로 볼품없이 튀어나온 나무뿌리의 가닥을 잡고 매달려 벼랑 위에 사는 인간 가족에게 들키지 않고 연명하는 것이었다. 우린 집안에 울려 퍼지는 전화벨을 엿듣거나 어머니 역할을 떠맡은 누군가의 쉿 소리 혹은 엎드려 라는 말에 순순히 따르기도 하고 괜히 읊조리며 반발하다가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지곤 했다.

또 우린 발아래에 해골이 가득 쌓여있을 거란 논리를 자연스럽게 흡수한 채로, 기어 내려갈 엄두는 감히 내지도 못하고 우리가 밟고 선 땅을 마냥 높은 낭떠러지의 꼭대기로 짐작했다. 절박하게 서로의 얼굴을 이따금 조명으로 비추거나 면박을 주며 기글댈 때도 있었다.
그렇게 옹기종기 살았다.

가끔은 산 위를 정찰하는 헬리콥터에 몰래 올라타 지리를 파악하려 애쓰기도 했다. 집 안에 숨어들어 우리 마음에 공유되는 무언가 억울한 기조를 타계하려고도 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서로 쉿쉿대기가 전부였다. 인간 가족이 집 밖으로 나오는 날이면 두더지처럼 천천히 절벽 아래로 이어진 나무뿌리의 맥을 따라 짚고 아래로 내려가다 굴러떨어지기 일쑤였다.

어느 날은 내가 그 집 딸내미에게 씌어 몰래 새벽에 나와 식은 밥을 꺼내 먹다가 발각되어 뛰쳐나와 산길을 달리다 길의 중간에 누군가 투신을 하기 전 남겨놓은 옷가지와 신발을 발견했다. 어머니에게로 뛰어가 의문을 제기했다. 어머니는 그것을 확인하고 나자 내가 다시 나무뿌리로 돌아가는 것을 막았다. 우리 어머니도 무언가 자기만의 의무를 수행하느라 그런듯했다.

위기를 의식한 너무 많은 존재들이 급히 뿌리를 잡고 땅으로 내려오려 움직이다 굴러떨어져 죽었고 나는 난리 통에 찬찬히 땅을 밟아 내려왔다. 절벽 밑의 허물어져가는 집 현관에 숨어들었다. 기둥 뒤에 숨어 있자 누군가 다가왔다. 나는 없는 척이 아니라 죽은 척을 해야해서 눈을 감았다. 집주인은 재차 돌아와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나를 기믹하듯이 불을 껐다 켰다하며 떠나는 시늉을 하고 또 몸을 뒤로 제쳐 나의 죽음을 확인했다.

눈꺼풀 너머로 침침한 공간이 훤히 내다보였다. 그는 눈을 감은 내 앞에 상을 펴고 담배를 피우며 카드게임을 했고 내가 이 이야기의 오류를 발견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나의 박탈을 선언했다. 그가 타박을 주자 나는 꿈에서 깼다. 침대 앞에 놓인 거울에 시뻘건 태양이 비추어 내 방 전체가 붉었다. 석양보다도 붉은, 하루의 가장 붉은 아침이었다.

아주 하급의 존재로 치부되는 그런 공포, 완전히 영원히 플레이어일 수 밖에 없는 내 존재에 대한 공포, 신을 믿게 된 이유와 상통하는 공포.

밤에 섬망이 발생하기 쉬우므로 가족이 밤에 환자를 돌보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친숙한 환경을 위해 환자가 평소에 사용하는 물건을 한 두가지 병실에 가져다두어 정서적인 안정을 주고 환자가 심한 초조와 흥분 증상을 보여 자신이나 주변에 위협이 될 수 있을 때에는 진정제나 수면제를 투여합니다. 환자에게 오늘의 날짜와 장소, 사람에 대한 정보를 주기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좋으며 불필요한 외부 자극은 최소화하되 간접조명을 비추어 환자가 착각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삼성서울병원 질환백과

하지만 매일 잠을 자고 일어나면서도 왜 여태 한번도 이 색깔, 이 섬광을 보질 못한걸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요즘 내가 왜 이런지 네가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한 번 써볼게.
네가 한국으로 돌아간 이후로 나는 완전히 길을 잃었어. 아마 너도 똑같이 느낄지도 몰라. 너무 많은 수의 사람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고 자주 놀러 나가게 되면서 서서히 스스로에게서부터 벗어나게 되잖아. 천천히 사라지다 못해 자기 자신을 사회적 존재로 환원시키기 위해서.

난 그냥 내가 아무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단 말이야. 내 욕망으로부터 멀어지고, 내가 관심 있어 하는 것들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이 증상은 내가 책을 보거나 영화를 볼 때 더 표면 위로 드러나. 내가 뭘 읽고 있는지 혹은 뭘 보고 있는지 잘 이해를 못 하겠어. 아무 감정도 흥미도 느끼지 못해. 그동안에는 내 뇌에 깃든 허상을 통해서만 이런 것들을 느껴온 것만 같아.

나는 내게로부터 멀어져, 결국 너에게서도.

나를 거대한 불안으로 추동하는 이것을 바꾸어야만 해. 이건 마치 내 영혼이 갈기갈기 조각나서 내가 하나의 인간이 되지 못하는 것과 같아. 내가 오늘 너에게 전화해서는 너에게 있어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다고 말했지. 너는 나를 유령 취급한다고. 그건 나 때문이야. 왜냐하면 나는 나라는 사람에게서 무엇이 존재하는지 모르겠거든. 내가 길을 잃었다고 말했잖아…
여기에 기반해서 너에게 사과하고 싶어. 너의 인생에 나쁜 사람이 되어버려서, 나는 그 정반대가 되고 싶어, 너의 행복, 빛, 구별되는 존재, 네가 날 사랑할 수 있게 만드는 요소들로.
네가 날 이해하고 용서하길 바라.

분명한 것은 내가 악몽을 기다리고 있기에 그가 내게로 온다는 점이다. 내가 자고 있을 때 그는 자기의 성기를 내 입에 밀어 넣었고 나는 나를 사로잡고 짓누르는 악몽의 맛에서 벗어나기 위해 방문 쪽으로 내달렸다. 그러나 배 위에 놓인 무게감으로 인해 내가 내달렸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심지어 어쩌면 침대 위에 좀 더 오래 머무르고 싶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이후에 들 정도로 나는 느릿하게 벗어났다. 마치 물속을 거니는 듯했다.

인간의 지능과 야수의 통찰력 사이의 그 공정한 싸움은 인간의 음험한 계략에 비하면 놀랄 만큼 결백해 보였다.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어렸을 적 또래 아이들과 호텔 수영장에 가면 머리끈을 떨어뜨린 후 잠수해 집어 올리는 놀이를 하곤 했다. 우린 이기는 행위가 중요했지 누구를 이기는지에 대해서는 결코 분투하지 않았다. 70센티미터, 1.5미터, 나중에 좀 더 용감해진 뒤엔 5미터… 어떨 때는 그 머리끈이 누구보다도 느리게 바닥에 도착했다. 그의 형상이 내 뒤에서 다가오는 모습도 그렇게 흐리고 분산된 모습이었다. 그는 저번 날처럼 얼굴이 없었고 어떻게든 내게로 자기의 것을 밀어 넣기 위해서 자꾸 형상을 바꾸었다. 나는 엉덩이를 내어주기 위해서 그의 얼굴에 내 지난 애인의 얼굴과 상체를 덧붙였다. 그건 그런대로 잘 붙었다. 조금 지직거리긴 했지마는.

그는 자기 성기의 형태를 이리저리 바꾸었고 나 역시도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막대기 같은 걸 자라나게 해서 우린 함께 뒤엉켰다. 하지만 친숙함을 조금 가미했음에도 불구하고 악몽의 맛은 떨쳐낼 수가 없었다. 거울을 마주한 우리 모습은 그저 덩굴 같았다. 그의 얼굴은 가면 같았다. 익숙한 얼굴을 투영하려 해도 그건 납작한 가면 이상의 무언가가 될 수 없었다. 그의 눈에는 생기가 없었다. 아무리 내 방이 어두컴컴하다 해도…

이상한 것들은 보통 우리 발밑에서 은밀하게 돌아다니기 마련이다. 하지만 위기가 닥치기만 하면 이들은 홍수라도 난 것처럼 곳곳에서 지상으로 올라와 사회를 위협하는 어떤 힘이 덮칠 기회를 노리며 웅크리고 있다가 사회의 긴장 상황을 틈타 잠입하는 것이다. 그 힘은 울타리를 부수고 사회의 배수구를 범람하고 길을 뚫는다. 나중에 물이 빠지면 그 길 끝에는 다른 풍경, 다른 질서가 나타날 것이다.
이는 이질적 요소의 침입인가 아니면 어떤 과거의 반복인가?
미셸 드 세르토, 『루됭의 마귀들림』

역사라는 것은 본래 하부 경제구조가 객관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말하는 자의 입과 헤게모니에 의해 전달될 수 있는 가능성이 ‘언어학의 전환’에 의해 초래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구조주의와 포스트 구조주의가 등장하지만 그것은 이미 포스트 모던 현상이었다.
정당의 기준 붕괴 이후 위사도, 이단도 자유롭게 존재하게 되며 전후비판이 내포하는 근대과학과 논리에로의 비판이 과학과 논리 자체의 부정으로 변질되어 비합리적인 국가주의를 낳는다.
전후비판은 터부이자 70년대의 지적유행이 되어 권력의 이데올로기와 밀통하기 시작한다.
정아영, 『일본의 1968년 학생운동에 대한 사회적 기억과 평가』 (경제와 사회 2007’ 겨울호)

우리는 경유지에 열린 작은 어시장을 흘끗 넘겨다보며 군침을 흘렸다. 무언가 다 같이 주워 먹고 축축한 바닥에서 복통에 널브러져 누워있을 때를 틈타 나의 옛 연인은 내 위로 올라타서 짓눌렀다. 내가 기억하는 정확한 그의 부피감과, 경도와, 몸 전체가 해면조직과도 같은, 그러나 아주 정확한 정도의 부피감과 경도와, 몸 전체가 해면조직과도 같은, 부피감과, 경도와… 옆을 홱 돌아보니 모두가 잠든 가운데 일원 중의 한 남자가 우리를 보며 힘차게 성기를 흔들고 있었다. 눈에는 거의 분노랄게 서린 채로.

헐레벌떡 기지 행성으로 돌아온 뒤 남자 셋이 타고 있던 컨버터블 우측 보닛에는 화마에 찌그러지고 불탄 얼굴 형상의 인장이 찍혀있었다. 우측에 탑승했던 남자의 녹아내린 얼굴, 그의 얼굴이 곧 인장의 얼굴이었다. 복사한 것처럼 불에 탄 두 얼굴이 나란했다. 좌측과 중앙에 탑승했던 남자들은 마르고 굳어 하얀 분진을 풀풀 풍기고 꼭 롯의 아내와도 같이, 너무 놀라 죽은 것만 같이 생존해있었다.

“그러나 신은 양을 사랑했다.”
불일치하는 유머 관계의 달인으로서 신은 집요하게 인간을 양에 비유했고, 반면 인간은 신의 관점에서 보면 자신을 구성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 비천한 존재를 거부하고 박해했다.
사랑을 베풀기 위해서 신에게는 비유를 뒤바꾸는 이 술책이 필요하다.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은 지칭의 문제를 야기한다.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 되어야만 하며, 더 정확히 말해 동물들 가운데 가장 순종적이고, 우매하며, 불안에 떠는 존재, 즉 그 자체로는 결코 유일자가 아닌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양은 홀로 존재하거나 개체화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비탈 로넬, 『어리석음』

어머니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없다. 그녀는 낮 동안에 거실을 배회하고 이것저것의 일들을 해낸다. 나는 가끔 방안에 숨죽이고 앉아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따위의 일들을 하지만 문 너머에 지나다니는 발소리에 신경이 곤두설 때가 있다. 그녀는 거의 고의로 그런다시피 내 방문을 지나쳐 오빠의 방으로 가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청소를 한다. 나는 종종 떠나간 사람들의 인상이 얼굴보다도 걸음걸이의 리듬과 형세에 머문다고 생각한다. 우리 어머니의 경우에는 굳은살이 마루에 스치는 소리가 당신의 인상을 정의했다. 그녀가 거실에서 굳은살을 갈아내는 소리 또 그것이 바닥에 깔아놓은 신문지에 떨어지는 소리는 그녀가 하릴없이 틀어놓는 텔레비전의 별 볼 일없는 소음보다도 더 크게 들린다. 이 집은 무언가 잘못 지어졌다.

나는 이제 그녀 대신 휴지통을 비우며 콘돔과 담배꽁초의 수를 센다. 영원한 여성성이 우리를 고양시킨다. 그녀는 결코 침상에서 일어날 줄을 모른다. 남들이 잠에서 깨어날 새벽에 그녀는 자기 몸을 일으키는 생리적 리듬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어 한다. 달아나는 마음으로 그녀의 의지는 애써 몸을 뉜다. 무기력하게 잠든 둥근 뒷모습은 아주 무겁다. 그 위로 먼지들이 산뜻하게 내려앉는다. 햇볕을 한가득 품어 내면서.

이원론들이 의심스러운 이유는 모든 개념적 이분법이 원칙상 유해하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이원론들이 특히 두 세계의 주민을 차별하는 것을 두 세계의 통일을 위한 조건으로 요구한다는 데에 있다.
에드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까스뜨루, 『식인의 형이상학』

이따금 꿈의 한 껍질이 벗겨지면 조금 찌뿌둥하면서도 외피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고는 했다. 하지만 그러한 순간마다 오른 눈 뒤는 조금 더 뻐근해지고, 묵직해지고… 말하자면 추가 하나 늘어나 달려 보다 희뿌연 심연으로 머리가 잠겨 들고는 하는 기분이었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상상할 때에 조금 더 현실로 발돋움하여 허물이 벗겨지는 느낌을 받으면서 이러한 직관의 갱생은 마치 현실로 다시 한번 땅에 발을 끌어당겨 디디는 터치의 순간만큼 재빠르게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버스는 다음 정류장을 향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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